제1절 입도수행강요문 > 우리말달마이입사행론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우리말달마이입사행론

제1절 입도수행강요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24,042회 작성일 21-07-23 16:17

본문

1절 입도수행강요문

 

(, 완전한 깨달음의 길)에 들어가는 길은 많으나 두 가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첫째는 이입(理入, 근본원리)이며, 둘째는 행입(行入, 실천행위)이다.

 

이입(理入)은 교(, 경전)를 의지하여 근본을 깨닫고 일체 중생이 모두 참된 성품을 갖고 있으나 망상과 객진(客塵)에 덮여 분명하게 요달(了達)할 수 없다. 망상을 버리고 진성(眞性)에 돌아가서 마음을 응결(凝結)하여 벽()을 관()하면 나와 남이 없고, 범부와 성인이 동등하며, 굳게 머물러 옮기지 않아 다시 경문(經文)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 이것이 이()와 더불어 그윽하게 부합되어 분별이 없고 고요하여 함이 없는 행위로 이입(理入)이라 한다.

 

행입(行入)은 네 가지 실천이다. 그 외 나머지 행위는 모두 이 행위에 포섭된다. 첫째는 전생의 관보를 받는 행위인 보원행(報怨行)이며, 둘째는 인연을 따르는 행위인 수연행(隨緣行)이며, 셋째는 바라는 마음이 없는 행위인 무소구행(無所求行)이며, 넷째는 진리대로 살아가는 행위인 칭법행(稱法行)이다.

 

보원행은 수도(修道)를 실천하는 사람은 고통을 받을 때에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내가 지나간 옛적부터 수 없는 세월 속에서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따라서 유위(有爲)의 세계에 유랑하여 많은 원한과 증오심을 일으키며 위해함이 한이 없었다.’ 지금 비록 범함이 없으나 이것은 나의 과거 세상의 재앙이며 악한 행위의 결과가 익은 것이다. 하늘의 탓도 아니며, 다른 사람의 탓도 아니다. 그러므로 인내하는 마음으로 참고 받아야 한다. 고통을 준 원수는 없는 것이다.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괴로움을 만날지라도 근심하지 말라.” 하셨다. 왜냐하면 의식은 근본에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음이 일어나는 때 진리와 더불어 상응해서 원한을 체득하여 진리의 길에 나아가는 것이니, 이것을 보원행(報怨行)이라 한다.

 

수연행(隨緣行)은 중생은 자아가 없어서 업()의 반연(攀緣)에 얽혀서 고통과 즐거움을 같이 받으니 모두 인연을 따라 나는 것이다. 수승(殊勝)한 과보(果報)와 영예로운 일이라도 나의 과거의 숙세 인연을 감득(感得)하는 것이다. 지금 그것을 얻었으나 인연이 다하면 없어지니 무엇을 기뻐할 것인가? 얻고 잃는 것은 인연을 따를 뿐 마음에는 더하고 덜어지는 것이 없으며, 기쁨의 바람에도 움직이지 않아 그윽이 도를 따르니, 이것을 수연행(隨緣行)이라 한다.

 

무소구행(無所求行)은 세상 사람들이 미혹해서 곳곳에 탐하고 집착하는 것을 그것을 이름하여 구한다고 하니, 지혜로운 사람은 진리를 깨달아서 속세를 가지고 마음을 돌이켜서 편안한 마음으로 함이 없고 형상을 따라 움직이며 온갖 것이 이렇게 텅 비어서 바라거나 즐거울 것이 없다. 공덕천(功德天)과 흑암녀(黑闇女)가 항상 서로 좇아 다녔으니, 삼계에 오래 머무는 것이 마치 불난 집에 있는 것과 같다. 몸이 있는 것 모두 고통이니 누가 얻어서 편안하겠는가? 이러한 곳을 통달하는 연고로 모든 존재가 생각을 쉬어 구함이 없는 것이다. 경에 이르시기를, “구함이 있으면 다 고통이요 구함이 없으면 즐겁다하시니 판단해 알라. 구함이 없는 것이 진실로 도를 행하는 것이다.

 

제사 칭법행(稱法行)이라는 것은 성품이 청정한 이치는 그것을 지목하여 법이라고 하니, 이 이치는 모든 형상이 이렇게 텅 비어서 물듦이 없고 집착할 것이 없으며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다. 경에 이르시기를, [법에는 중생이 없으니 중생의 더러움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법에는 자아가 없으니 자아라는 더러움을 여의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지혜로운 사람이 만약 이 이치를 믿어 알 수 있다면 응당히 일컫는 진리대로 수행할 것이다. 진리의 본체는 아끼고 탐함이 없어서 육체와 목숨과 재산을 던져 행하는 보시는 시행했다는 생각을 버리되, 마음에 아끼고 애석해하는 것이 없으며 삼공(三空)을 통달하여 알아서 의지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는다. 다만 더러움을 제거해서 중생을 섭화(攝化)해서 형상을 취하지 안나니, 이것은 자기를 이롭게 하는 것이며, 다시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할 수 있고, 또한 보리의 도를 장엄할 수 있는 것이니, 보시하는 것이 이미 그러하다면 나머지 다섯 가지도 또한 그러하다. 망상을 제거해서 육도(六度)를 수행해도 행하는 바가 없는 이것이 칭법행(稱法行)이라고 한다.

 

====================

* 적교오종(藉敎悟宗); 경전을 통하여 종지(대의)를 깨닫는다는 의미이다. 종지(宗旨)는 실단(悉檀)이라고도 하는데 실단(悉檀, siddhanta)이란 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하는 방법을 말한다. 여기에는 네 가지가 있다. 즉 제일의실단(第一義悉檀), 대치실단(對治悉檀), 각각위인실단(各各爲人悉檀), 세계실단(世界悉檀) 이다. ()은 변(두루)의 의미이고 단()은 시(, 베품)라는 의미다. 이러한 사실단(四悉檀)의 각각을 살펴보면 제일의실단(第一義悉檀)이란 상대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곧 바로 진리에 들어가게 하는 입리실단(入理悉檀)이다. 대치실단(對治悉檀)이란 상대의 병(번뇌)에 따라 약을 처방하여 치유(악을 끊게)하는 단악실단(斷惡悉檀)을 말한다. 각각위인실단(各各爲人悉檀)이란 중생의 성질과 능력에 따라 선근(善根)이 자라도록 하는 대기설법(對機說法)으로 생선실단(生善悉檀)이라고도 한다. 세계실단(世界悉檀)이란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에 따라 존재일반의 실상을 드러내어 진정한 인간의 삶과 복지를 실현하는 낙욕실단(樂欲悉檀)이라고도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이트 정보

상호. 사단법인 통섭불교원 대표. 김성규 사업자등록번호. 514-82-14810 [사업자등록, 법인등록정보 확인]
Tel)053-474-1208 Fax)053-794-0087 E-mail) tongsub2013@daum.net
주소 : 대구광역시 남구 두류공원로 10(대명동)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성규

Copyright © 사단법인 통섭불교원. All rights reserved.

  • 게시물이 없습니다.

접속자집계

오늘
0
어제
0
최대
0
전체
0